서론: 이 글은 무엇을 하는 글인가
솔라나(SOL)가 배정됐고, 스크립트는 “마루보주 블랙 - 약세"다. 캔들 패턴 하나다. 지표처럼 계산식이 길지도 않고, 파라미터도 거의 없다. 그래서 오히려 해부할 게 많다. 정의가 짧은 규칙일수록 정의 바깥에 숨은 선택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성격부터 밝혀 둔다. 이번 편은 시세를 받아 성과를 검증한 글이 아니라 규칙 자체를 해부한 글이다. 승률도 수익률도 적지 않는다. 솔라나의 가격을 한 번도 조회하지 않았으니 적을 수가 없다. 아래 그림은 전부 실제 시세가 아니라 규칙을 설명하기 위한 모식도이고, 값은 내가 손으로 만들었다. 솔라나는 그림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런 자산에서 이 규칙이 맞을까"를 따져 보는 사고 실험의 무대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꼬리 없는 장대음봉 한 개를, 내 봇이 매도 쪽 근거로 읽어도 되는가.
본론 1: 무엇을 재는가
마루보주는 일본어에서 온 말로, 흔히 “머리를 민 스님"에 빗댄다. 머리카락에 해당하는 꼬리가 없다는 뜻이다. 블랙 마루보주는 음봉이다. 한국식 차트에서는 파란색이다. 시가에서 시작해 종가까지 한 방향으로 내려간 봉이다.

일반 음봉은 위꼬리와 아래꼬리가 있다. 위꼬리는 고가와 시가의 차이, 아래꼬리는 종가와 저가의 차이다. 꼬리가 있다는 건 기간 중에 가격이 한 번은 반대편으로 갔다는 뜻이다. 올라갔다 내려왔거나, 내려갔다 올라왔다. 마루보주는 이 되돌림이 사실상 없었다는 주장이다. 시가가 고가이고 종가가 저가이니, 그 기간 내내 파는 쪽이 판을 쥐었다고 읽는다.
즉 이 패턴이 재는 것은 한 봉 안에서의 한 방향 편향의 순도다. 얼마나 내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깨끗하게 내렸느냐다. 이 점이 중요하다. 같은 하락 폭이라도 위아래로 흔들린 봉은 마루보주가 아니다.
본론 2: 어떻게 계산하나
조건문으로 옮기면 이렇다. 시가·고가·저가·종가를 OHLC라고 부른다.
범위 = 고가 - 저가
몸통 = 시가 - 종가 (음봉이면 양수)
조건1 = 종가 < 시가 (음봉일 것)
조건2 = 몸통 / 범위 >= 문턱 (꼬리가 거의 없을 것)
신호 = 조건1 그리고 조건2
눈에 띄는 건 조건2의 “문턱"이다. 엄밀한 마루보주는 몸통이 범위와 정확히 같아서 비율이 1이다. 그런데 실제 봉이 이 값을 정확히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다. 체결이 한 틱만 위로 튀어도 위꼬리가 생긴다. 그래서 구현은 문턱을 둔다. 몸통이 범위의 95퍼센트 이상이면 마루보주로 친다는 식이다. 문턱이 얼마인지는 구현마다 다르고, 트레이딩뷰 스크립트 안쪽 값을 내가 여기서 단정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문턱이 정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그림에서 범위는 모두 같고 몸통 비율만 바뀐다. 100퍼센트와 95퍼센트는 누가 봐도 같은 모양이다. 85퍼센트쯤부터 꼬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문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봉이 신호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파라미터가 사실상 하나뿐이라 과최적화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 하나가 신호 빈도를 통째로 바꾼다. 문턱을 낮추면 신호가 늘고 순도가 떨어진다. 높이면 신호가 드물어지고 순도는 올라간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세를 돌려 봐야 알고, 이 글은 돌리지 않았으므로 답하지 않는다.
또 하나. 이 규칙에는 크기 조건이 없다. 몸통/범위는 비율이라서, 범위가 아주 작은 봉도 비율만 높으면 통과한다. 거래가 한산한 시간대의 짧은 봉이 그대로 마루보주가 될 수 있다. “장대"라는 이름과 달리 길이를 보지 않는 셈이다. 이걸 막으려면 변동성 지표(예를 들어 ATR)의 몇 배 이상일 것 같은 조건을 덧붙여야 한다. 다만 그건 이미 마루보주 블랙이 아니라 내가 만든 변형 규칙이다. 구분해서 기록해 두려고 한다.
본론 3: 어떤 심리를 가정하나
이 패턴의 서사는 이렇다. 시가부터 매도세가 쏟아졌고, 한 번도 매수세가 반격하지 못한 채 가장 낮은 곳에서 마감했다. 다음 봉에서도 같은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약세” 신호다.
다만 이 서사는 앞뒤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쓰인다. 같은 모양을 세 자리에 놓아 봤다.

- 상승 뒤에 나오면 반전 가설이다. “천장에서 한 번에 꺾였다"고 읽는다.
- 이미 하락 중이면 지속 가설이다. “계속 내린다"는 확인에 가깝다. 새 정보가 적다.
- 횡보 중이면 박스 하단 이탈 가설이다. 이탈이 진짜인지는 다음 봉이 정한다.
세 가지 해석은 서로 모순이다. 반전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지속이라고 할 수 없다. 규칙 자체는 맥락을 보지 않으므로, 이 패턴 단독으로는 어느 가설인지 정해지지 않는다. 봇에 넣는다면 앞쪽 추세를 판정하는 별도의 조건이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그 조건이 붙는 순간 신호의 성격은 패턴이 아니라 그 조건이 결정한다.
그리고 이 서사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매도세가 “쏟아졌다"는 해석은 한 봉이 하나의 연속된 세션이라는 가정 위에 있다. 주식에서는 장이 열리고 닫히니 일봉이 자연스러운 세션이다. 코인은 그렇지 않다.
본론 4: 코인 시장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가정
코인은 24시간 돈다. 일봉이 어디서 끊기는지는 시장의 성질이 아니라 거래소 설정값이다. 국내 거래소는 한국 시간 자정을 기준으로 삼고, 해외 거래소는 협정 세계시 자정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두 기준은 아홉 시간 차이다.

그림은 손으로 만든 하루짜리 흐름이다. 처음엔 완만하게 내리고, 중반부터 더 내리다가, 저점에서 되돌린다. UTC 자정에서 자르면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기만 한 봉이라 마루보주 블랙이 나온다. KST 자정에서 자르면 같은 흐름이 전혀 다른 봉이 된다. 시가가 이미 내려온 자리에서 시작하고, 저점을 찍고 올라와 마감하니 아랫꼬리가 긴 양봉이다. 신호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이 데이터가 아니라 달력 경계에서 갈린다. 심지어 색깔이 뒤집힌다.
이게 이 패턴에서 가장 크게 와닿은 대목이다. 마루보주는 “한 방향으로 쉬지 않고 갔다"는 주장인데, 그 주장이 참인지는 어디서 하루를 끊었는지에 달려 있다. 봇을 어느 거래소 일봉에 붙이느냐로 신호 집합이 달라진다. 내 봇이 업비트에서 주문하고 해외 일봉을 참조한다면, 신호를 만든 봉과 주문하는 시장의 하루가 서로 다른 것이다.
솔라나라는 무대에서는 걱정이 하나 더 있다. 솔라나는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레이어1이다. 이런 자산은 네트워크 쪽 사건(업그레이드, 장애, 생태계 소식)이 차트 바깥에서 가격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마루보주 하나가 “파는 쪽이 판을 쥐었다"는 심리를 말해 준다 해도, 그 이유가 심리인지 사건인지 봉 모양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 다만 특정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가 확신하지 못하니 여기서는 쓰지 않는다.
덧붙여 현물에는 공매도가 없다. 약세 신호가 나와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진 걸 파는 것뿐이다. “숏 진입 신호"로는 못 쓰고, 보유 중일 때의 청산 후보나 신규 매수 보류 조건으로만 쓸 수 있다. 이름은 “매도 신호"지만 봇에서 그 역할은 사실상 매수를 막는 필터다.
본론 5: 이 규칙이 못 보는 것
정리하면 이렇다. 마루보주 블랙은 다음을 보지 않는다.
- 거래량. 매도 압력이 큰 거래량을 동반했는지, 얇은 호가에서 밀린 건지 구분하지 못한다.
- 봉의 절대 크기. 앞서 말했듯 비율만 본다. 아주 작은 봉도 통과한다.
- 앞뒤 맥락. 반전인지 지속인지 모른다.
- 다음 봉. 신호는 봉이 닫힌 뒤에야 난다. 그 사이 이미 가격은 움직였다. 이게 후행성이다.
- 시간 경계. 위에서 본 대로 하루를 어디서 끊었는지에 따라 같은 시장이 다른 신호를 낸다.
특히 후행성이 아프다. 파는 쪽이 완승한 봉은, 닫히고 나서 보면 이미 내릴 만큼 내린 뒤다. 닫힌 봉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내가 재 본 게 아니라서 말하지 않겠다.
결론: 봇에 넣을 것인가
내 결론부터 적는다. 단독 신호로는 넣지 않는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문턱이 정의가 아니라 선택이라 신호 빈도를 사실상 내가 정하게 된다. 성과를 재 본 적 없는 값을 근거 없이 정하는 셈이다. 둘째, 반전과 지속을 구분하지 못한다. 앞쪽 추세 조건이 필요한데, 그러면 패턴이 아니라 추세 조건이 판단을 대신한다. 셋째, 일봉 경계가 거래소 설정값이라 신호 자체가 달력에 흔들린다. 이건 코인에서만 생기는 문제라 주식용 설명을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된다.
대신 남겨 둘 용도는 있다. 봇이 이미 정해 둔 약세 조건(추세 판정, 변동성 조건)과 겹칠 때 쓰는 보조 필터다. 예를 들어 “신규 매수 보류 조건"에 마루보주 블랙을 한 줄 얹어 보는 정도다. 그것도 일봉 경계를 하나로 못 박은 뒤에 말이다. 시세를 돌려서 이 조합이 의미 있는지는 다른 글에서 확인할 일이다. 이번 편에서는 하지 않았고, 한 것처럼 쓰지도 않는다.
이번 편은 시세를 받아 성과를 검증한 글이 아니라 규칙 자체를 해부한 글이다. 승률을 적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다.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코인의 매수·매도를 권하지 않는다.
약어 풀이
- SOL (Solana) — 솔라나. 이번 편에 사고 실험의 무대로 배정된 코인.
- OHLC (Open, High, Low, Close) — 시가·고가·저가·종가. 봉 하나를 이루는 네 가지 값.
- UTC (Coordinated Universal Time) — 협정 세계시. 해외 거래소가 일봉 경계로 자주 쓰는 기준.
- KST (Korea Standard Time) — 한국 표준시. UTC보다 아홉 시간 빠르며 국내 거래소의 일봉 경계 기준.
- ATR (Average True Range) — 평균 실제 범위. 변동성의 크기를 재는 지표.